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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2장 ‘사회와 개인’에 관한 노트

우리는 앞서 ‘역사가와 그의 사실’에 대해 살펴보았다. 역사가와 사실에 대한 질문 다음에 올 것은 ‘사회와 개인’이다. 역사와 역사가는 사회와 개인 가운데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있을까. 이에 대해 카는 간명하게 대답하고 있다. 달걀 없이 암탉을 얻을 수 없듯이, 암탉 없이 달걀을 얻을 수 없다[1]고 사회와 개인 가운데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하면서도, 사회에 우위를 둔다. 왜냐하면, 사회와 완전히 동떨어진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는 이를 도입부에서 언어[2]의 기원과 로빈슨 크루소의 신화[3],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David Émile Durkheim)[4]을 예로 들며 이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결론에 이르러서 카는 앞서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라고 불렀던 역사가 추상적이고 고립적인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오늘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 사이의 대화[5]라고 밝힌다. 단, 카는 사회와 개인의 대립을 가상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게 하여 우리의 사고를 혼란시키려는 미끼에 불과하다[6]는 단서를 달았다. 카는 앞에서도 랑케와 콜링우드가 만들어 놓은 역사관의 산맥 사이의 오솔길을 찾아낸 바 있다. 이에 카가 전개한 역사 속 사회와 개인에 대한 견해와 우리가 습득하고 다듬어야 할 내용은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이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먼저, 카가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한 설명을 현대적 사례와 예시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으로는 사회와 개인에 대한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7],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8], 에드워드 파머 톰슨(Edward Palmer Thompson)[9]의 견해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70~80년대 한국 사학계의 한 축을 담당했던 민중사학에 대한 현재의 모습을 통해 사회와 개인에 대한 고민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개인은 사회와 분리될 수 없다

2014년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주인공 덕수는 1950년 6.25전쟁 탓에 부산으로 피난을 온다. 곧이어 전쟁이 한창이던 베트남으로 건너가 기술자로 일한다. 덕수는 고난과 역경을 겪는다. 그렇다면 덕수가 겪었던 고난은 어디에서 오는가? 카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개인은 사회와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기도 쉽지 않다. 이는 사회를 뒤바꾸는 혁명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사회집단에 권력을 주었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 프랑스 혁명은 사회에서 개인을 자유롭게 한 것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실은 그조차 사회의 산물이었다.[10] 1945년 8월 15일, 해방된 것은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로서 조선이었다. 대한민국이 건국하고, 새로운 통치체계의 확립은 새로운 사회 속 개인의 역할을 호명했다.

역사를 개인에 의해서 쓰인 개인에 관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어쩌면 심각한 오만일 수 있다. 더불어 이는 역사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사에서 1차 사료로 간주하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자. 이 저작의 소유자는 순수하게 김부식과 일연일까. 아니다. 그 시대의 기록과 저서, 그리고 사회적으로 축적된 지식으로 만들어진 책이 지금 우리 손에 전해지고 있다.[11] 그러면서 카는 자신의 목적이 사회 안에서 연구하고 있는 역사가가 그 사회를 자신의 연구에 얼마나 면밀하게 반영하는지 보여주는 데 있다고 말한다.[12] 이는 카의 아나키스트 바쿠닌, 레닌, 러시아혁명사에 관한 저작을 보면 짐작이 간다. 그의 관심은 상당부문 러시아와 소련에 있다. 제국주의를 거쳐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인 영국의 외교관이었던 카가 냉전 체제의 한 축인 소련에 흥미를 느낀 것은 역사가로서 자신이 사회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축이었다. 앞선 1장에서 역사가를 연구하라고 했던 카는 이제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라고 조언한다. 역사가는 개인이면서 또한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13] 사마천(司馬遷)[14]을 떠올려보자. 그는 흉노와의 전쟁에서 진 이릉을 변론하다 무제의 노여움을 샀다. 그는 사형을 면하고자 궁형을 받아들였다. 사마천이 진시황이 지배하던 시대에 태어났다면, 사기를 기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천재로 불리던 축구 선수 박주영이 병역의무가 없는 곳에서 태어났더라면, 사회적 복무가 가능한 곳에서 태어났더라면, 수많은 이들로부터 비난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카의 조언은 우리가 어떤 사건을 바라볼 때 이를 이루는 환경을 살피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개인을 강조한 역사관은 없었을까. 카는 개인의 천재성을 역사의 창조력으로 간주하려는 욕망은 역사의식의 원시적인 단계에서 나타나는 특징[15]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어쩌면 원시적인 역사의식 단계에 있는지도 모른다. 임진왜란에서 조선 수군의 승리를 이순신 장군의 용맹함으로 돌리는 것, 60~70년대 한국 경제 발전의 박정희 대통령 개인의 통치력으로 돌리는 것, 현 정부의 불안정한 노동환경의 문제를 모조리 박근혜 대통령 개인 탓으로 치환하는 것, 남북 관계의 긴장을 김정은의 몰상식함으로 돌려버리는 것은 다른 것 같지만 모두 같다. 카 역시 공산주의의 기원과 성격을 분석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카를 마르크스의 창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이, 볼셰비키 혁명의 깊은 사회적 원인을 연구하는 것보다는 그 혁명이 니콜라이 2세의 어리석음 때문에 또는 독일의 자금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그리고 20세기의 두 세계대전을 국제관계 체제에서의 어떤 근원적인 붕괴가 빚어낸 것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빌헬름 2세와 히틀러의 개인적인 사악함이 빚어낸 것으로 보는 것이 더욱 쉬운 일[16]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역사란 위인들의 전기’라는 말은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해 있다.

결론에 이르기에 앞서 카는 개인과 대중 속 개인을 구분할 것을 강조한다. 우리는 수백만이 밀집한 곳에 모인 개인들의 이름을 알 수 없지만, 그 개인들에게 인격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예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4.19혁명에 참여했던 수많은 학생, 518광주민중항쟁의 시민군, 87년 노동자대투쟁에 나섰던 노동자는 무명의 인물이 아니었다. 카는 이와 관련해 역사가는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라면 불만을 품고 있는 한 사람의 농민이나 하나의 촌락에 관해서 알 필요가 없지만, 수천 개의 촌락에서 수백만 명의 농민들이 불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역사가라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된다[17]고 설명한다. 카의 이러한 견해는 70~80년대 민중사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이를 취사선택하는 것 또한 역사가가 하는 것이기에 이데올로기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지배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저항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다.[18]

역사, 이데올로기, 개인

카는 인간의 개인적인 행위가 초래하는 결과는 흔히 그 행위가 의도하거나 요구한 것이 아니라는, 더구나 다른 어떤 개인이 의도하거나 요구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 해왔다고 말하고 있다.[19] 그리고 역사의 사실이란 사회 속에 있는 개인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실, 그리고 개인의 행동에서 본인들이 의도했던 것과 자주 모순되거나 가끔 상반되는 결과를 생겨나게 하는 사회적 힘에 관한 사실이라고 설명한다.[20] 사회적 힘의 실체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 확장해보자.

앞서 언급한 사회적 힘을 브로델의 장기지속을 통해 살펴보자. 브로델은 사건, 콩종튀르(conjoncture)[21], 장기지속이라는 시간성을 부여한다. 여기서 장기지속은 부동적인 역사로 지중해라는 지리적 환경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역사를 설명한다. 사실 시간을 셋으로 나누는 것은 매우 자의적인 일이지만, 사건과 상황적 리듬을 결정하는 장기지속에 특권을 부여했다.[22] 그러면서 브로델은 인간의 역할을 주변부로 쫓아낸다. 브로델은 인간을 중심에서 주변부로 이동시키며 경제와 지리적 현상에 종속된 존재로 파악한다. 이 또한 당대의 시대 상황과 격리되지 않는다. 1980년대 장기지속적인 경제 위기에 대한 해법의 하나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먼 경제적 과거로부터의 설명을 통해 위기에서 안도감을 찾는 것.[23] 이에 경제학자들은 브로델에게 도움을 청했다. 브로델의 유산은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24]의 세계체계론으로 이어진다.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을 통해 접근해보자. 오늘날 취업난은 어디서 오는가. 자본주의사회에서 대부분의 위기는 생산과정의 모순에서 나타난다.(학교의 위기, 가족의 위기, 청년의 위기, 그것들은 노동력재생산의 일반화된 위기의 징후이다)[25] 80년대 고등학교 졸업자의 20%가 대학에 진학하던 시기에 반해, 2000년대 대학생은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알튀세르는 1970년 논문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에서 역사 속 개인에 대한 ‘이데올로기의 주체 호명 테제’를 제시한다. 이전까지 마르크스주의 진영에서 주체란 역사 이전에 이미 결정된 존재로 보았던 데 대해 역사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주체를 설명한다. ‘역사의 주체’가 ‘역사 속의 주체’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소통 수단도 포함된다.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학교를 통해 민족주의, 국수주의, 자유주의 등의 이데올로기가 주입되고, 역사 또한 그러하다. 이러한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는 영국의 역사가들에게 반향을 일으킨다. 알튀세르 이후 영국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은 계급 결정론적 사관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노동계급의 주체성을 강조했던 톰슨은 이에 대해 반기를 든다.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 사이의 필수적인 매개인 경험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카는 어떤 개인이 1930년대의 대공황을 일으키려고 했다거나 혹은 그것을 원했다고 믿기란 어려운 일[26]이라면서도, 개인의 행동으로 공황이 발생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생산양식 탓에 대공황이 발생했지만, 인간의 행동으로 대공황이 벌어졌다는 입장을 동시에 취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해보고자 한다.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아이폰은 없었을까 또는 스마트폰은 없었을까. 비스마르크가 18세기에 태어났다면-그렇게 되었더라면 그는 비스마르크가 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는 어리석은 가정이겠지만-그는 독일을 통일시키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결코 위인이 될 수 없었을 것[27]이라는 카의 주장을 참고하자.

민중사를 통해 살펴본 사회와 개인 그리고 주체

앞서 카는 특정한 집단으로서의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했다. 80년대 세상을 변혁하기 위한 열정이 넘치던 시기, 역사학계에서도 민중사학이 제기됐다. ‘역사의 주체는 민중’이라는 점에 입각해, 주로 민중운동사를 중심으로 연구가 축적됐다. 이는 현재 우리가 갑오동학혁명, 419혁명, 518광주민중항쟁 등에서 간소하게나마 살펴볼 수 있다. 민중사학 역시 시대적 흐름과 궤를 같이했다. 그러나 사회운동이 후퇴하면서 민중운동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민중사학 또한, 후퇴한다. 그동안 사회적 약자로 억압받던 민중은 투쟁하는 주체로만 서술되어왔던 탓도 있었다. 그러면서 2000년대 들어서 한국의 민중사학도, 포스트모던과 4세대 아날학파의 영향을 받아 미시사, 생활사 등의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민중사에 대해 언급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80년대를 거쳐 2000년대 한국의 민중사의 변천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카의 명제를 아주 적절하게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독립적인 순수한 개인이 존재한다는 추상을 배제한 가운데) 개인과 사회, 그리고 역사의 주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역사의 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천문학을 연구하는 이들이라면 인간의 역사란 하찮고 미미한 시간이겠지만.

참고문헌

E.H. 카/김택현 역, 『역사란 무엇인가』(1961/1997), 까치글방
프랑스아 도스/김복래 역, 『조각난 역사』(1987/1997), 푸른역사
역사문제연구소 민중사반, 『민중사를 다시 말한다』(2013), 역사비평사
루이 알튀세르/이종영 역, 『맑스를 위하여』(1965/1997), 백의
에티엔 발리바르/이해민 역, 『역사유물론 연구』(1974/1999), 푸른미디어
주경철, 「브로델의 세계」『근대 세계체제론의 역사적 이해-브로델과 월러스틴을 중심으로』(1996), 한국 서양사학회 편, 까치
변상출, 「에드워드 톰슨의 알튀세르 비판의 실제」『철학논총 제74집』(2013), 새한철학회, p.297-325
고원, 「루이 알튀세르와 영국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경희사학 제24집』, 경희사학회, p.391-406
Louis Althusser, 「Ideology and Ideological State Apparatuses(Notes towards an Investigation)」(1970), http://marxists.org

[1] E.H. 카/김택현, 『역사란 무엇인가』(1961/1997), 까치글방, p.54
[2]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개인적인 상속물이 아니라 그가 성장해온 집단에게서 사회적으로 취득된 것이다. 언어뿐만 아니라 환경도 인간 사유의 성격을 결정하는 데에 기여한다;아주 어렸을 적의 인간의 관념들은 다른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개인이 사회로부터 분리된다면 말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앞의 책], p.52
[3] 사회와 격리된 로빈손 크루소 또한 사회와 독립한 개인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영국의 요크 지방에서 살았고, 매일 신에게 기도를 한다. 심지어 그는 매일 날짜를 세면서, 주일까지 챙긴다.
[4] 뒤르켐(1858~1917)은 자살을 개별적 행위로만 규정하지 않고 무엇보다 사회적 조건에 의해 발생, 강제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았다.
[5] [앞의 책], p.87
[6] [앞의 책], p.87
[7] 페르낭 브로델(1902~1985). 프랑스의 역사학자로 아날학파의 중요한 성원이었다. 전기, 수량화, 문화적 접근법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구축했다. 주요 저서로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가 있다.
[8] 루이 알튀세르(1918~1990).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로 흔히 구조주의자로 분류된다. 주요 저서로는 『자본론을 읽는다』, 『맑스를 위하여』 등이 있으며, 20세기 영국의 역사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번 원고에서 주되게 참고할 알튀세르의 글은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다.
[9] 에드워드 톰슨(1924~1993). 영국의 역사가로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이 대표적인 저서다. 급진적 사회운동에 참여했으며, 역사에서 계급투쟁의 주체로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역할을 강조했다.
[10] 언제나 그랫듯이 개인을 통해서 그리고 개인의 발전에 새로운 기회들을 제공함으로써 움직여나갔다;또한 자본주의의 초기단계에서는 생산과 분배 단위의 대부분이 개인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질서의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진취성이 수행하는 사회질서 안에서의 역할을 열렬히 강조했다. 그러나 그 전체 과정은 역사적 발전의 어떤 특정한 단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회적 과정이었으며, 사회에 대한 개인의 반역이라든가 사회적 속박으로부터의 개인의 해방이라는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는 과정은 아니다. E.H. 카/김택현, 『역사란 무엇인가』(1961/1997), 까치글방, p.55
[11] 상식적인 역사관은 역사를 개인에 의해서 쓰여진 개인에 관한 어떤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견해는 19세기의 자유주의 역사가들에게 의심 없이 수용되었고 또한 조장되었는데, 실제로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것은 너무 단순하고 부적절하게 보이므로, 좀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가의 지식은 오로지 그만의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니다:아마도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그리고 수많은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그 지식의 축적에 참여해왔을 것이다. [앞의 책], p.56-57
[12] [앞의 책], p.68
[13] [앞의 책], p.71
[14] 사마천(기원전 145년? – 기원전 86년),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로 <사기>의 저자다.
[15] 과거의 업적물에다 그것을 이룩했다고 생각되는 으뜸가는 영웅의 이름을 붙이기 좋아한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서사시를 호메로스라고 불리는 어느 음유시인의 업적으로, 그들의 법률과 제도는 리쿠르고스나 솔론이라는 사람의 업적으로 돌렸다 [앞의 책], p.72
[16] [앞의 책], p.74-75
[17] [앞의 책], p.80
[18] 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모든 사회는 사회적 갈등의 장소이며, 현존하는 권위에 반대입장을 취하는 개인은 그것을 지지하는 개인만큼이나 그 사회의 산물이자 반영물이다. [앞의 책] p.83
[19] [앞의 책], p.80
[20] [앞의 책], p.82-83
[21] 브로델 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인 이 말은 번역하기 쉽지 않다. 국면, 경향, 추세 또는 그냥 콩종튀르로 번역하기도 한다. 브로델에게서 콩종튀르는 상승, 하강의 사이클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기본적으로 변화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22] 프랑수아 도스/김복래 역, 조각난 역사(1987/1997), 푸른 역사, p.156
[23] [앞의 책], p.216-217
[24] 월러스틴(1930~ ). 미국의 사회학자, 저서로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 『세계체계분석』등이 있다.
[25] 에티엔 발리바르/이해민 역, 『역사유물론 연구』(1974/1999), 푸른미디어, p.155
[26] E.H. 카/김택현, 『역사란 무엇인가』(1961/1997), 까치글방, p.82
[27] [앞의 책]. p.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