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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아빠

오늘로서 남편이자 아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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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1

여보, 사랑한다는 말부터 할께요.
오늘, 나는 당신의 남편이자 아빠가 되었어요. 그리고 당신은 나의 부인이자 엄마가 되었구요.
3일 동안 엄청난 진통을 견디면서도,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던 당신을 보면서 새삼 또 배움을 얻었어요.
당신이라고 아프지 않았을까요? 태어나 처음 겪는 고통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 그리고 공포마저 느꼈을 테지요.
아마, 당신은 내가 걱정할까봐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을테죠.
그렇게 참으며 해방이가 태어날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 당신인데…쉽게 나오지 않았어요.
1시간 동안의 수술을 받으면서 엄마가 된 당신인데, 아직 우리 해방이 얼굴도 보지 못했죠.
태어나면 젖부터 물리고 싶었었는데 말이죠.

해방이가 수술실에서 나와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난 당신에게 미안했어요.
고생은 당신이 했는데, 정작 해방이가 처음 본 사람은 아빠였으니까요.
그래서 난 해방이를 안을 수 없었어요. 엄마 품에 처음 안겨야 하니까요.

여보, 기억나요?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 함께 밤을 새우던 날, 시속 150km로 달리는 고속도로 위 차 안에서 결혼 이야기를 꺼내던 날, 속이 좋지 않은 줄 알았는데 어느새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걸 함께 기뻐했던 날…그 모든 장면이 눈앞에서 휘리릭 지나갔어요. 당신과 했던 약속을 하나씩 되새겨 봅니다.

아마, 당신은 현명하고 따뜻한 엄마가 될테죠.
그럼 나는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할까요?
우리가 결혼식에서 했던 약속을 떠올려봅니다.
해방이 아빠이기 이전에 당신의 남편이라는 것을,
무대 위 연기자로, 기획자로 살아가는 당신의 삶을 지지하고
당신의 활동을 갉아먹지 않는 동반자이자 조력자가 되겠다는 약속을
다시 다짐합니다.
꼭, 말입니다.
가족이라는 무대 위에 오를 엄마, 아빠라는 배역은 우리가 대본을 함께 써 나가자구요.
이미 정해진 것처럼 ‘엄마’라는 배역을 당신에게 맡기지 않겠다구요.
다시 한 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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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에게1

수고했어, 고맙고 반가워.

해방아, 며칠 후면 네 이름이 정해지겠지만 당분간은 익숙한 ‘해방’이라고 부를께. 아빠가 되면 매일매일 네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막상 네가 세상에 나오고 나니 어떤 말을 해야할까 정리가 안 되는 것 같아. 아직은 잘 실감이 나지 않은 것두 있구 말이야.

시간이 지나고 네가 자라면 어떨지 알 수 없지만, 네 엄마에게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은 해줬으면 좋겠어. 네가 엄마에게 신호를 보내고 3일 동안 엄마는 정말이지, 큰 고통을 참아왔단다. 덕분에 엄마와 아빠, 그리고 너는 간호사 언니들과 이틀을 같이 보냈단다. 엄마는 고통스런 와중에도 “간호사들, 노동강도가 엄청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어. 아빠도 곰곰이 생각했단다. 산모에 대한 진료뿐만 아니라, 보호자의 질문에 대한 응답도 해야지, 산모나 보호자의 도드라진 감정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기도 해야지, 야간 근무도 해야지…여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 그리고 아침이 되자, 병원 구석구석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우리 곁에 다녀갔단다. 밤새 나온 쓰레기를 치우는 것부터, 네 엄마가 마실 보리차를 보충해야 했고, 화장실도 말끔하게 만들었단다.

그러던 중 아빠는 얄궃은 생각이 들었단다. 이 병원에는 노동조합이 있을까? 청소노동자들은 병원 직원일까, 아니면 파견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일까. 의사들은 당직근무를 서면 며칠씩 쉬던데, 간호사는 야간 당직근무를 서고 얼마나 쉴 수 있을지 궁금했단다. 그리고 병원 청소노동자는 1년 마다 파견업체가 바뀌어서 매년 월급 인상도 없는 게 아닐까 궁금했단다.

아빠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아니란다. 너를 만나기 위해 꾸준히 병원에 다니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단다. 이 곳 병원은 사람을 치료하는 곳인데, 곳곳에 상품을 전시하고 있었어. 산모수첩에는 매일유업 광고가 덕지덕직 붙어있었고, 의사는 ‘고운맘카드’로 결제가 되지 않은 종합비타민을 권했고, 간호사는 ‘제대혈’ 광고전단을 매번 나눠줬고, 병원에 설치된 TV에는 ‘제대혈 치료 효능’ 광고가 종일 나오고 있었단다. 병원 1층 로비에는 커피전문점이 입점해 있었고, 분만실이 있는 6층 대기실에는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케잌과 선물을 광고하고 있었단다. 그리고 병실도 6등급으로 나뉘어 있었어. 기본 6인실은 6,800원 정도야. 1인실은 기본요금에다 8만원을 더 얹어야만 했고, 그렇게 5등급이 더 있었어.

특히, 병원 복도에 붙은 환자의 권리와 의무를 보면서 의아했단다. ‘권리’에 ‘환자는 경제적 이유 등을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나와 있었어. ‘의무’에는 ‘환자는 병원비를 지불할 의무를 지닌다’가 나와 있었어. 헷갈리지 않니? 병원비를 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돈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럼 의무를 다 하지 못하는 건데…아빠는 학교 다닐 적에, ‘의무를 다 하지 않는 이들에게 권리란 없다’라고 자주 배웠단다. 물론, 말장난 하자는 건 아니야. 다만, 네가 태어난 병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리고 해방아, 네가 자라면서 오늘 이 순간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아빠가 페이스북에 올린 네 소식을 보고 축하해 준 이모와 삼촌이 참 많았어. 그 중에는 멀쩡히 잘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를 이야기 한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빼앗긴 이모와 삼촌들도 있었어. 네가 태어난 세상은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의무’를 다 하지 않았다고 여기는 곳이야. 그래서 이모와 삼촌들은 50m 굴뚝에 올라가서, 한 달째 밥 먹기를 중단하면서, 차가운 길바닥에 천막을 치고 ‘권리’를 말하고 있어.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왜 네 탄생을 축하해줄 수 있었을까?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돕고 살아가길 바라기 때문이지. 그래서 아빠도 조금씩 세상이 나아질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살아가. 그것마저 없다면 너한테 참 미안할테니까.

아빠는 말야, 네가 태어난 오늘을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이야.
약속!
아빠도 조금씩 어떤 아빠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또 노력할께.

해방아, 사랑해